안녕하세요 늦은 밤에 포스팅을 하게 되었네요. 좋은 밤입니다^0^
오늘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의 이야기 7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를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바로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건축한 건축가 요른 웃손입니다. 2019년 1월 호주를 방문하기 전 저는 꼭 제 두 눈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꼭 보고 싶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바로 오페라하우스의 실물을 영접한 날엔, 매우 화창하고 해가 쨍한 날씨였는데 지붕의 조각조각에 눈이 부셨고 끊임없이 감탄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다시 꼭 가보고 싶은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곡선의 아름다운 모양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면 그저 놀라우실 겁니다. 건축가 요른 웃손의 대표작인 오페라 하우스 외에도 쿠웨이트의 국회의사당을 건축하였습니다. 두 건축물을 비교한다면 요른 웃손만의 스타일을 잘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LET'S GO!
*5편에도 프리츠커 건축상에 대해 요약해 놓았습니다.
☞프리츠커 건축상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이란?
매년 하얏트 재단이 "건축 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을 보여주어 사람들과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입니다. 1979년 제이 프리츠커(Jay A.Pritzker)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현재 세계 최고의 건축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프리커츠 상 수상자 선정과정이 노벨상과 유사하므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립니다.
일곱 번째 주인공
요른 웃손 JORN UTZON

- 출생 : 1918년 4월 9일, 덴마크 코펜하겐; 2008년 11월 29일 타계
- 교육 : 왕립 미술 아카데미 건축학부, 코펜하겐, 1942
- 주요 프로젝트 : 웃손 하우스, 스페인 마요르카, 1994; 쿠웨이트 국회의사당, 쿠웨이트 시티, 1982;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1973
- 2003년 프리츠커상 수상
대표작 #1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1973

웃손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오페라 하우스 설계가 항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해군 소속의 건축가였고 그 역시 기초적인 선박 제작에 조예가 있었지만, 그의 영감은 훨씬 더 평범한 귤 조각에서 왔다고 합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완공되기까지 요른 웃손은 1956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설계 국제공모에 응모해서 당선된 후, 그의 설계를 발전시켰고 시공을 지휘했습니다. 그러나 1966년 그가 해임되고 뉴사우스 웨일스의 공공사업 장관이 선발한 건축가들의 패널이 공사를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뉴사우스 웨일스주 정부 소속 건축가인 테드 파머가 유리벽과 내부공사를 완공했고, 1999년 요른 웃손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건축가로 다시 취임해서 그의 원래의 비전을 반영하는 일련의 설계 원칙을 발전시키고 건물에 대한 미래의 모든 변경에 대한 안내자 역할을 했습니다.
내 설계가 항구에서 항해하는 요트나 조개껍데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오렌지를 닮았다. 오렌지 껍질을 벗기면 이런 조각들을 얻게 된다. 오페라 하우스와 비슷한 모양이다. 나의 모형에서도 그랬다. 나는 그것이 항구의 돛과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흰돛과 모양이 비슷해진 것은 우연이다. 돛의 영향을 받았다면 나의 아버지가 해군 소속의 건축가였고 내가 그 큰 모양들(배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은연중에 영향을 미친 정도일 것이다. 내가 이 설계를 할 때 나는 시드니 항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사진과 해도를 통해서 시드니 항이 나에게 눈에 익은 존재이기는 했지만. - 에릭 엘리스, 좋은 주말, 1992. 10. 31
시드니에 잘 어울리는 건물이다. 이 부지는 시민들이 산책하는 곳, 심지어 그 주위를 배를 타고 항해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 건물은 하나의 조각품이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2개의 극장을 상자 안에 들여놓는 대신, 나란히 펼쳐놓고 그 위에 돛을 펼쳐 놓음으로써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밑에는 반도에 잘 들어맞는 커다란 플래트폼을 설치함으로써 시드니 항의 부두를 걷는 효과를 주기로 했다. 앞에 언덕이 보이면 사람들은 그 위로 올라가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앞에 로비로 올라가는 넓은 계단을 설치했다. - 캐서린 브리스베인, 가디언, 2007. 10. 15
대표작 #2
"쿠웨이트 국회의사당"
쿠웨이트 시티 1982

쿠웨이트의 국회의사당은 4개의 공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붕이 덮인 광장과 의사당, 큰 회의실, 그리고 모스크입니다. 이 복합 빌딩의 모든 부분들 (사무실, 회의실, 리셉션 룸, 도서관, 의사당 등)은 중앙로를 따라 배치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부분들은 조그만 문밖 테라스나 뜰 주위에 지은 서로 크기가 다른 모듈로 이루어져 있는데, 골목길을 거쳐 중앙로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국회의사당의 첫인상을 각 요소가 빌딩에 리듬을 준다고 표현합니다.
당시의 쿠웨이트는 오늘날과는 매우 달랐다. 나는 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큰 지붕을 전면에 배치한다면, 그들(지도자들)이 [시민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나라는 지도자 지향의 , 족장 중심의 사회로 단체의식이 매우 높다. 민주주의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사회다. 그리고 그늘은 매우 중요한 문화적 요소이다. 빛이 매우 강한 곳이므로 그늘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아라비아에서는 어떤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면 그의 그늘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우리가 건물을 지을 준비가 다 되었을 때, 고객 가운데 중요한 인물 - 국회의장- 이 지붕을 만드는 데에 드는 비용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내가 그를 만날 기회를 잡았다. 나는 그에게로 가서 민주사회에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 지붕은 그런 접촉을 위한 열린 대기실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그의 한 손을 잡고 - 이것은 매우 대담한 행동이었다 - 흔들었다. 그 손은 죽은 사람의 손처럼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내가 팔을 놓아주자 손이 그의 허리께로 축 늘어졌다. 그러나 2주일 후 우리는 지붕을 만들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 미켈 유울 홀름 편, 요른 웃손: 건축가의 우주, 덴마크 훔레베크: 루이지애나 근대미술관, 2004
다음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의 이야기 8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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