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의 이야기 4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알아볼 건축가는 리처드 마이어 RICHARD MEIER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건축사 수업을 들으며 흰색의 건축물을 많이 건축했던 건축가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는 흰색에 대해 "흰색이라고 그냥 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빛과 변하고 있는 것 하늘, 구름, 태양, 달 등에 의해서 거의 끊임없이 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흰색을 지배했던 백색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에 대해 알아보러 가 봅시다~!
LET'S GO!
*3편에도 프리츠커 건축상에 대해 요약해 놓았습니다.
☞프리츠커 건축상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이란?
매년 하얏트 재단이 "건축 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을 보여주어 사람들과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입니다. 1979년 제이 프리츠커(Jay A.Pritzker)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현재 세계 최고의 건축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프리커츠 상 수상자 선정과정이 노벨상과 유사하므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립니다.
네 번째 주인공
리처드 마이어 RICHARD MEIER
- 출생 : 1936년 10월 12일, 뉴저지 주 뉴어크
- 교육 : 건축학사, 코넬 대학교, 뉴욕 이타카, 1957
- 주요 프로젝트 : 아라 파치스 박물관, 로마, 2006; 게티 센터, 로스앤젤레스, 1997; 장식미술 박물관, 독일 프랑크푸르트, 1984; 하이 미술관, 애틀랜타, 1983; 아테니움, 인디애나 주 뉴 하머니, 1979; 스미스 하우스, 코네티컷 주 대리언, 1965
- 1984년 프리츠커상 수상
대표작 #1
"하이 미술관"
애틀랜타 1983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리처드 마이어 렌조 피아노는 세계에서 박물관을 가장 잘 짓는 건축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하이 미술관은 이 두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겼습니다. 리처드 마이어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영감을 이끌어 내어 건축을 하였습니다. 리처드 마이어는 1983년에 완공된 이 박물관 건물의 설계자였고, 렌조 피아노는 2006년 확장공사를 담당한 건축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이 미술관(High Museum of Art)은 미국 남동부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총 15,000여 점의 미술품들을 전시 중입니다.
하이 미술관의 설계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장식미술, 현대미술, 19세기 미술 등 꽤나 다양한 컬렉션을 사회적 기능도 갖는 박물관에 수용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구겐하임 박물관(1959)을 둘러본 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채택한 전시 공간의 나선형 배치를 직선 화한 방식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 후타가와 요시오, 「스튜디오 담화: 15명의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도쿄: A. D. A. 에디타, 2002
..... 램프의 순환 시스템을 램프에서 벗어난 평평한 바닥인 전시공간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나는 내가 중심적이고 빛으로 가득 찬 구겐하임이 훌륭한 공간을 얼마간 도입해서 재해석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사람들이 박물관 안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램프와 함께 이 멋진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동시에 전시공간은 항상 순환 공간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전시실에서 전시실, 또는 전시실에서 중앙 홀 공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시실 안에 있을 때는 순환 공간의 일부라고 느끼지 않는다. - 후타가와 요시오, 「스튜디오 담화: 15명의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도쿄: A. D. A. 에디타, 2002
대표작 #2
"아테니움"
뉴 하모니 1979
리처드 마이어는 스미스 하우스 (1967), 더글라스 하우스(1971) 등의 주택설계로 건축계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1979년 완성한 아테니움이라는 공공건물을 통해 전 세계에 "하얀 건축"을 각인시켰습니다. 정확성, 정확한 평면과 모양, 램프 자족감 등 마이어가 박물관 설계에서 끈질기게 추구하는 표현방식들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테니움은 도자기와 강철 패널로 지은 최초의 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와바시 강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이어가 사용한 램프와 유리벽, 필로티가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연상시킵니다.
아테니움은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부지는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강의 가장자리는 숲의 가장자리와 다르다. 건물의 한 면은 닫혀 있고 두 면은 열려있다. 도로변도 있고 마을을 접한 곳도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건물은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런 면들 사이의 차이도 표현해야 한다..... 그러니까 각각의 장소에 맞는 설계를 해야 한다. - 후타가와 요시오, 「스튜디오 담화: 15명의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도쿄: A. D. A. 에디타, 2002
아테니움이 역사적 건물들처럼 보일 필요는 없었다. 물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그런 건물들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건물은 작은 마을처럼 되었다......- 후타가와 요시오, 「스튜디오 담화: 15명의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도쿄: A. D. A. 에디타, 2002
"슈퍼 재료" : 금속 패널 나는 다양한 타이프의 금속 패널 건축을 시험해보았다..... 표현된 것은 건물의 부분이지 그 볼륨은 아니었다..... 격자무늬 구조는 건물을 통합시키는 요소이다..... 따라서 격리된 기능적 시스템들은 병치된 층으로 읽힐 수 있다. 얇은 표피의 벽은 건물의 가장 표현적인 부분이며..... 전체 건물의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우리는 그것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미국에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비슷한 기술로 몇 년 전에 한 일을 다시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 리처드 마이어, 「리처드 마이어: 건물과 프로젝트 1979-1989」, 뉴욕: 세인트 마틴스 프레스, 1990
대표작 #3
"스미스 하우스"
대리언 1965
주택설계는 마이어의 초기 작업에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1963년 마이어는 건축가로서 개업했습니다. 그는 뉴욕 시의 자신의 아파트에서 뉴저지주 에섹스 폴스에 부모님을 위한 주택을 짓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이어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또 다른 작업, 즉 1965년에 코네티컷 주 대리언에 또 다른 주택인 스미스 하우스를 지으면서부터였습니다. 마이어는 주택 짓기를 즐겼습니다. 이유는 주택은 공공건물보다 일의 진척이 빠르고, 위치와 기후, 집의 방향 등을 이용해서 에너지 절약을 하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 같은 다른 일들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미스 하우스는 어떤 면에서는 나의 첫 번째 건물이었다. 반면에 부모님의 집은 내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데에 도움을 준 프로젝트였다. 쇼드퐁에 있는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보면(르 코르뷔지에가 1912년 스위스 쇼 드 퐁에 지은 빌라 잔느레-페레는 스미스 하우스처럼 그의 첫 작품이었고 역시 자기 부모님을 위해서 지은 집이었다), 흥미롭지만 그가 아직 탐색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에 관해서 말하면..... 부모님의 집을 지은 후, 내가 가지고 있던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식의 세계관이 극적으로 변했다. 나는 또한 그 집 안에서의 나와 부모님과의 모든 관계를 생각해야 했고 그래서 그 집이 매우 복잡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따라서 스미스 하우스는 설계자로서 나의 방식을 찾아낸다는 의미에서 나의 첫 번째 건축 작업이었다. - 후타가와와 요시오 「스튜디오 담화: 15명의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도쿄: A. D. A. 에디타, 2002
다음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의 이야기 5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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